에베소서에서 성령의 역사(행 19:1~12) - 우리 교회 부모의 사명
서론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오래 쓰다 보면 바이러스가 침투할 때가 있다. 그러면 작동이 잘 안 되거나, 기능이 떨어질 때가 있다. 심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셋(초기화)을 해야 한다. 기본 설정은 남겨두고 다 지워버리고 새로 까는 걸 리셋한다 고 한다. 사람도 그래야 한다. 창 3장 사건으로 아담과 그 후손은 본래 형상을 잃어버렸다. 사탄의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과 같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3,6,11장의 본성으로 태어나서 그 속에서 체질이 형성된다. 새로 판을 깔아야 할 상태이다. 새로 판을 깔아주는 분이 그리스도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다(고후 5:17). 우리를 리셋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 주셨다. 여러분이 매일 삼 집중하며 이걸 발전시키면 성령님이 보는 눈을 계속 열어 주신다. 3,6,11장의 체질을 극복할 수 있는 영의 말씀과 영의 생각으로 계속 인도해 주신다.
1. 우리 교회 부모의 사명은 무엇이겠는가?
1) 원색 복음 회복 운동의 바톤을 후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원색 복음이 아니면 자신과 세상 문제의 진단도 해결도 안 된다. 문제와 답을 모르면 종교와 율법주의와 신비주의, 혼합 주의로 빠진다.
(1) 창 3장의 문제와 그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과 초래된 결과를 잘 알아야 한다.
(2) 이것의 해결책은 오직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고 누려야 한다.
(3) 이걸 알고 누리는 사람은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사명을 갖게 된다.
세상과 사람을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이 이해가 되고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된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원색 복음의 바톤이 후대에게 전달하게 된다.
2)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죄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와 사랑(자기 형상인 인간을 탄식하며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의 눈으로 본다. 그래서 주의 마음과 생각과 눈을 갖는다.
하나님 떠난 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 하에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딤전 2:4, 벧후 3:9). 하나님 떠난 세상은 지금 크게 두 가지 세계관을 갖고 있다.
1) 인본주의 세계관(사람이 주인 되는 것) 2) 우상 숭배 세계관(주인 된 사람이 자기를 위해 하나님 아닌 신을 찾는 모든 종교)이다.
→ 우리는 이런 세상을 보며 하나님 공의의 눈과 하나님이 탄식하시는 아가페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3) 전도자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본론
1. 바울은 성령께 잡혀서 원색 복음 운동을 했다.
1) 에베소의 성령 세례(19:1~7)
에베소 제자들은 아볼로를 통해 복음을 받았는데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 그들은 요한의 회개의 물세례만 알고 있었다. 이에 바울은 세례요한이 뒤에 오시리라 했던 그 예수님을 증거하고 주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안수하자 성령이 임해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다. 이것을 에베소의 오순절이라고 한다. 이때 성령의 세례받은 자의 수가 12명쯤 되었다.
2) 성령의 세례에 대한 견해
(1) 장로교 - 중생을 성령의 세례와 같은 것으로 본다. 중생과 구분하여 성화의 과정에서 성령 충만을 강조한다. 은사 능력 불 이런 것 별로 강조하지 않았다. 말씀만 강조했다.
(2) 순복음 - 성령의 세례는 부어지는 성령의 세례 곧 능력이 임하는 것으로 본다.
행 8:14~19절 - 베드로도 안수함으로 사마리아 성도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행 10:44~48 – 고넬로 가정에서 말씀 전하는데 성령이 내려 오시면서 성령이 부어졌다. 그래서 방언을 하며 하나님을 높였다. 오히려 성령 세례가 임한 후 물 세례를 베풀었다.
→ 오순절 때나, 고넬료 가정이나, 에베소에서는 성령 세례의 결과 방언과 예언을 하였다. 방언과 예언을 한다는 것은 성령의 부어지심의 한 예가 된다. 그러나 성령 세례나 충만의 표징으로 방언과 예언만을 말해서는 안 된다. 성령 세례와 충만을 통해 나타나는 은사는 여러 가지다.
(3) 류 목사님 -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믿고 전하기만 했는데도 귀신이 떠나가고 병이 낫는 체험을 했다. 말씀 운동만 하셨는데도 성령께서 전도 운동이 일어나게 하셨다.
→ 공통점은 복음이 말로만 전달되지 않고 충만함과 능력과 확신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3) 전도의 주체는 그리스도시고 성령이시다.
이것을 사람의 임으로 못 한다. 우리는 이걸 믿고 계속 주객을 바꾸어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 통해 하시도록 믿음의 전도를 해야 한다. 계속 강조한 것처럼 구약에서 가나안 정복은 하나님이 자신 방법과 능력으로 하셨다. 이제 영적 가나안 정복은 그리스도께서 1:8의 권능의 성령으로 하신다.
4) 내가 항상 유지할 영적 상태가 있다.
내가 어떻게 할까 염려하며 고민하는 체질이 아니라 내 안에서 주님이 역사해 주실 것을 믿으며 기대하는 상태여야 한다. 이걸 위해 하나님의 소원과 주님의 관심과 생각에 24시가 필요하다. 그러면 항상 내 안에서 주님이 역사해 주실 것이 기대가 된다.
2. 두란노 서원 전도 (19:8~20)
1) 7~9절 –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전했다.
대상은 유대인들과 개종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 나라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을 믿으므로 개인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을 것이다. 믿는 자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실현되고 증거되는 것을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바울은 제자들을 따로 세워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2)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5시간씩, 2년간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론했다.
이때가 바울 선교사역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이 기간에 에베소만 아니라 아시아 일대에 복음이 전파되는 기회가 되었다. 당시 에베소는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 일대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에베소를 방문한 많은 사람은 바울의 두란노 강연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 교회를 세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제자들이 골로새 교회(몬 1~2), 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 교회(골 4:13) 등을 세웠다.
3) 11~20절 – 희한 능력이 나타났다.
복음 전파에 능력이 동반되었다(막 16:18, 행 1:8). 바울이 안수한 것도 아니고 단지 그의 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얹었는데도 치유가 되고 악귀가 떠나갔다. 이런 케이스가 성경에 또 있겠는가? 행 5:15에 베드로의 그림자에 덮인 사람이 나았다. 바울을 통한 성령의 역사에 마술사들이 놀랐다.
결론
1. 우리는 원색 복음 회복운동의 바톤을 후대에게 전달해야 한다.
2. 성경적 전도 운동의 바톤을 전달해야 한다.
3. 특히 우리 교회는 성경적 전도 운동을 통한 → 5나라 3가지 동역이 목표이다.
우리 후대가 주님의 망대로, 237 5천 종족을 위한 공부와 일을 하고, 그걸 통해 선한 일을 하면서 전도 선교하도록 우리가 통로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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