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교회메세지

2025년 3월 16일 주일예배 - 한 사람의 중요성(빌3:17~21)

by 별종외계오동 2025. 3. 16.

 

 

한 사람의 중요성(3:17~21)

 

우리가 전도하러 갈 때 한 사람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면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일 수 있고 때로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지옥에서 영벌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한 사람에게 정치적인 사상이 잘못 들어가거나 또 어떤 종교적인 사상이 잘못 들어가게 되면 자기만 죽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죽이고 수많은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련의 스탈린에게 공산주의 유물론 사상이 들어가니까 공산 혁명 간다고 수천만 명을 죽였어요.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수천만 명을 죽였어요.

캄보디아의 폴보트 라는 사람은 국민의 4분의 1을 죽였어요. 킬링 필드로 유명하죠. 반면에 한 영혼이 복음으로 구원받으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고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어요. 그러다가 영원한 천국의 기업을 얻게 되고 또 상급을 받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하여서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을 했다 하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어요. 그러니까 그는 버린 것과 얻은 것을 확실히 아는 삶을 살았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내가 받은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의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런데 그 의롭다 함을 받는 그 칭의로 끝나는 게 아니죠. 신분 권세 모든 배경이 다 보장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최종 종착점을 향한 믿음의 경주자의 삶을 살았다는 말씀을 드렸어요. 이처럼 복음 받은 한 사람이 중요해요. 한 사람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러 내가 현장 간다고 생각해야 해요. 이 사람이 복음을 받으면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고 수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고 수많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바른 제자가 되고 여러분처럼 이 눈이 열려서 제자를 세울 수 있는 제자가 나온다면은 여러분 결코 적은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재생산이 되어 이 복음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 그 한 사람이죠. 이 바울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1.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나를 본받으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어요.

1) 그는 하나님 떠난 인간 상태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짜로 이 영적인 눈이 열리다 보니까 왜 그리스도 아니면 안 되는지를 알았고 또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실제 누렸던 사람이죠? 우리가 진짜 복음을 누린다는 거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건데, 그거는 인간이 하나님 떠난 영적인 상태를 아주 사실적으로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씀이에요.

여러분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은 어떻게 됐습니까? 하나님의 배경과 임마누엘의 축복을 완전히 잃어버린 거죠. 그러면서 실낙원 한 거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 떠난 인간의 내면은 영적인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어요. 내가 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고 내 안에 성령으로 그리스도께서 임재, 통치하게 되니까 이게 회복됩니다. 이걸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 떠나 영이 죽은 인간 상태가 얼마나 목마른지, 얼마나 그 근본 상태가 불안한지, 또 어떻게 허한지 눌리는지 이런 것들을 여러분이 깨닫게 됩니다. 내면에 그러니까 불안함이나 허함이나 눌림이나 이런 상태를 누가 영적 상태다, 이렇게 얘기를 안 하니까 이걸 그냥 본성으로만 알고 있어요. 내 기분이 오늘 영 꿀꿀해 하면그냥 이게 내 본성에서부터 오는 느낌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이걸 하나님 떠난 영적 상태인 걸 사람들이 몰라요. 이렇게 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목마른 상태에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은 창세기 3611장에 빠져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더 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죠. 그 목마른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더 육체 중심으로 살게 돼 있어요. 오직 기쁨이 어디 있냐 하면, 이 육신적인 환경과 또 경제와 어떤 육신적인 성공에 기쁨이 있게 돼요. 그거를 목표로 삼게 돼요.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 애쓰고 힘들여서 자기 일에 성공하려고 애를 쓰잖아요. 성령님을 의지해서 힘쓰고 애씁니까? 임마누엘을 의지해서 힘쓰고 애쓰는 게 아니에요. 순전히 영이 죽었으니까, 임마누엘 못 누리는 그 이성으로, 자기 머리로 짜내게 애쓰고 몸부림 치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걸 뭐라고 그랬어요? 이게 인본주의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 거에요. 우리는 오랫동안 여기에 각인 뿌리 체질이 되어져서 그걸 당연지사로 여기며 살아왔던 사람이에요. 지금도 여러분의 영적 상태가 회복이 안 되면 여전히 이 삶으로 빠지게 됩니다.

전도자인 여러분은 여기에 대한 눈이 확 열려야 돼요. 천하보다 귀중한 한 영혼 보는 눈이 열려야 된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껍데기만 보지 마시고 지금 실패한 사람이나,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나 지금 영적인 부분에 대해서 여러분이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된다 이 말이에요.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절에서 2절 이 말씀을 하였죠.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죠. 그때 너희가 영적으로 죽었을 때 너희는 그 가운데서 이 죽은 상태에서 하나님을 인식 못하는 상태에서 이 세상 풍조를 따라왔다는 거에요. 이 세상의 사상, 이 세상에 이 풍속, 여러 가지 제도 속에서 그 제도 속에서 가르치고 있는 교육을 따라 살았던 거예요. 그런데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을 범죄케 해서, 영적으로 죽게 만든 이 사단에게 끌려다닌 거에요. 사탄은 죽은 영적 상태 그대로 두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대해서는 인식이 안 되고, 무지와 왜곡과 거짓 가운데 빠뜨려놓고 그 상태에서 인본주의 체질 가운데로 인간을 끌고 다닌다는 얘기예요. 거짓 사상에 빠지고, 거짓 교육과 거짓 가치관에 빠져서 3, 6, 11장의 본성대로 사는 체질대로 끌고 다닌다 이 말이에요. 그게 분명히 지금 불순종 아들들 가운데 역사는 영이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셔야 되냐 하면 정말 사단이 불신자 상태 때 그렇게 나를 형성시켰고, 그렇게 빠지게 했고, 그렇게 살도록 끌고 다녔구나 이렇게 인식을 하셔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지금 진짜 여기서 빠져나와서 다시 보좌의 배경과 임마누엘을 누리고 삼위 하나님과 교감이 되고 이 삼위 하나님의 임재, 통치를 누리게 된다면 이 불신자 현장이 정말 영적으로 보인다 이 말이에요. 이 사실이 제대로 보이고 그게 제대로 기도가 되는 사람은 전도자가 됩니다.

물론 불신자 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서 사람이 예의가 있고 성실하고 머리가 좋고 이러면 일단 점수를 우리가 매겨주잖아요. 또 그 사람들 중에서 특출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그 지혜와 머리로 지금 과학이나 기술이나 학문을 굉장히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은 일도 기가 차게 잘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 영이 죽은 줄로 아셔야 된다는 거예요. 인본주의 체질 가운데 사단은 지배하고 있다는 걸 여러분은 확실히 통찰하셔야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아까 말한 것처럼 이 사람은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고 많은 사람 죽이다가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한 영벌을 당할 사람이다. 이렇게 보여야 된다는 말이입니다. 주님이 천하보다도 귀중한 한 영혼이라 그랬어요. 그게 어디서부터 나오는 말이냐 하면 목자와 양의 비유를 할 때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단 말이에요.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목자가 굉장히 애타면서 찾잖아요. 한 마리 찾으면 어떻게 돼요? 천국에서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한 것보다 이 한 마리 찾는 것을 더 기뻐한다. 한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천국에서는 더 기뻐해서 잔치가 벌어진다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그걸 배경으로 해서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중하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운명이 사탄에게 잡혀 있는 인생을 보는 눈이 있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은 결코 아무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2) 절대 복음이 필요한 거예요.

지금 이런 은혜를 받아서 여러분은 치유 회복되고 있고 증인 되는 축복 속에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다 그리스도께 집중하는 시스템만 만들어지면 여러분의 영적 상태와 마음 상태, 생각의 상태는 치유 회복됩니다. 그리고 날마다 영적인 역량이 길러지게 돼요. 그래서 영적인 역량을 가지고 일 처리가 된다 이 말이에요. 문제 처리가 되고 인간관계 처리가 되는 거예요. 나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 성령으로 반응하는 삶이 된다 이 말이에요. 그게 돼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여러분에게 주어진 많은 일들이나 사건은 전부 다 이 역량을 기르라고 주신 문제들이에요. 그게 언약의 사람들이에요. 그게 언약의 여정을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일할 때 육신적으로 이 일이 잘 됐다 안 됐다. 그것만 보면 안 돼요. 만약에 여러분이 영적인 힘이 없고 영적인 삶의 시스템이 없으면 영적 관리가 안 돼요. 그러면 맨날 그냥 일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 거기에만 집중하게 돼요. 그게 사단이 원하는 바예요. 육신적인 일 잘하는 사람만 만들기를 원하는 겁니다. 세상을 영적으로 보는 눈은 전혀 감겨 있고 돈만 잘 버는 사람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겁니다. 그럼 그 돈이 누구 돈이 되겠습니까? 자기 돈이 되죠. 근데 누구를 위해서 쓰게 되겠습니까? 육신과 세상을 위해서 쓰게 되는 사단의 도구가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성도들은 바쁜 사람일수록 더 내가 깨워서 집중하려고 안 하면은 여러분 집중은 진짜로 안 됩니다. 집중이 안 되면 어떻게 돼요? 영적인 회복이 안 되니까 영적 메시지가 사실적으로 자기 것이 안 되는 겁니다. 영적인 역량이 길러지지 않아요.

오늘 본문에는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뭘 본받으라는 거예요? 진짜 영적인 눈이 열려서 현장 보는 눈, 시대 보는 눈, 사람 보는 눈이 사도바울이 열렸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살리고 치유하고 회복하고 하나님의 최고의 형상인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해서 그의 천명 사명을 이루도록 하는 일에 지금 사도 바울은 쓰임 받고 있는 거거든요. 그걸 본받으라는 거예요. 317절 같이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 나를 본받고 또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는 거예요. 이건 뭐예요? 모델들을 쳐다보라는 거예요. 진짜 이 복음이 뿌리내려서 진짜 답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역량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라는 거예요. 왜 눈여겨봐요? 본받기 위해서. 여러분이 눈이 열려서 복음에 입각한 삶을 사는 자들을 눈여겨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도 그걸 따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본이 되는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말이에요.

 

2. 종교인들은 모델이 될 수 없다.

1) 영적 문제에 대해 무지한 바리새인들은 그들은 육체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 왔다 갔다만 하는 종교인들은 한반도 영적인 회복이 확실하게 안 되고 다녀요. 그리고 영적인 역량이 계속 길러지는 것들이 체험 안 되면은 그 사람도 종교인입니다. 왜 종교인이냐 하면 복음의 능력도 모르고 복음도 못 누리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이 사람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인본주의 메커니즘으로 살아요. 계속 불안이라는 영적 상태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항상 자기가 불안한 가운데서 내가 돼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힘쓰고 애쓰는 인생을 살게 된단 말이에요. 그게 잡혀 있는 거예요. 시달리는 거예요. 그거 사단이 그렇게 빠뜨려 놓은 함정에서 지금 체질 되고 있는 거예요. 근데도 이런 영적인 회복에 대한 말씀은 잘 안 들리고 지금 내 현실에서 빨리 지금 성취 안 하면 안 된다, 성공 안 하면 안 된다 생각에 다 치중돼 있어요. 그리고 성공하면 어떻게 돼요? 그때부터는 육신적으로 놀아야 돼요. 그렇게 들어가면은 자기가 이루었기 때문에 자만에 빠져요.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못 쓰임 받아요.

바리새인들 지난주에 얘기했는데 바리새인들은 항상 육체를 자랑하고 신뢰했어요. 자기 혈통이나 자기들의 열심으로 율법의 의를 이루고자 했어요. 이런 것들을 자랑하고 신뢰했거든요. 왜 그래요? 이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를 모르기 때문에 그래요. 바리새인들은요.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했잖아요. 그러면서 실제 그 하나님 나라 복음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요.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고 또 병든 자를 고쳐요. 그랬더니 이 바리새인들은 뭐라 그랬어요? 영적인 눈이 하나도 안 열려 있는 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보고 바알새불이 짚혔다. 바알새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이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 사단을 얘기하는 거예요. 완전히 거꾸로 얘기하잖아요. 지금 이 바리새인들은요.

예수님이 안식일에 질병의 저주 운명 속에 있는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면서 해방시키시거든요. 그게 진짜 안식일의 본 뜻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율법의 전통과 그 유전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면서 비난했어요. 똑같이 하나님 믿는데 왜 이래요? 똑같이 하나님 믿어도 진짜 영적인 눈이 열리고 이 복음을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예요. 정말 영적인 문제 알고 복음을 못 누리면 하나님 믿는 것도 자기 열심으로 믿어야 돼요. 자기들의 종교적인 권위와 지위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끝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사람들이 이들이다 이 말이에요. 그들은 왜 육체를 자랑하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어요? 솔직히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눈이 안 열렸기 때문에 그래요. 자기를 못 봐요. 자기를 못 보면 남도 못 보죠. 그러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이 그들에게는 복음이 안 된 거예요.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필요 없고 병든 자라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필요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실제 그 당시에 죄인들인 세리나 창녀들까지 찾아가 주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어요.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 계셨어요. 그런데 이걸 바리새인들은 아주 비판했거든요. 그러니까 뭘 못 보는 거예요? 영적인 문제에 대한 눈이 안 열렸기 때문에 자기들이 행하는 행위로 자기들이 율법의 규칙을 지키고 율법의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만 자기가 의인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도덕 윤리 기준과 율법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보는 거예요. 복음의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복음이 복음 되지 못하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요. 지식 복음 이런 복음이에요. 이해력만 복음이에요. 자기의 본성은 극복 못 하는 거예요. 체질도 극복 못해요.

2) 이번에 1차 합숙 재훈련을 여러분 녹취하게 돼 있어요.

1차 합숙 재 훈련을 받으면서 여러분이 이 눈이 열려서 복음으로 답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게 진짜 은혜입니다. 장성도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해요. 자기는 기독교 집 안에서 컸기 때문에 물론 부모님이 열나게 싸웠다 그래요. 근데 영적 문제가 뭔지 자기는 잘 몰랐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런 우상 숭배하는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복음을 받고 나서 기쁘고 감사해서, 근데 은혜 못 누리는 기존 신자만 건드려서 이렇게 답을 줄 수 있었지, 완전 불신자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답 주는 거 거기에 생명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고백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에베소서 21절에서 3절에 대한 눈이 활짝 열리게 되니까 진짜 나도 여기에 빠져 있었구나 이 눈이 열리게 되니까 그때부터 불신자 전도가 되더라 이런 고백을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사실 바울은 원래 이 눈이 열려 있었던 사람입니까? 전혀 아니죠. 예수님에 대해서 제일 배척했던 바리새인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강건적인 은혜로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났어요. 그러니까 바울은 그냥 만난 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만난 거예요.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이 믿어진 거예요. 그때부터 성령의 능력에 잡혀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어요. 여러분 보세요. 아까 사단이 인간을 하나님 떠나서 영의 죽은 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사단은 이론이 아니란 말이에요. 귀신을 실제 부리는 귀신의 두목이죠. 그래서 실제로 개인 가정, 가문 지역 나라까지도 실제 능력과 세력을 가지고 역사하는 존재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성령의 능력에 잡혀서 그리스도가 확신되고, 성령의 능력에 잡혀서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게 필요한 겁니다. 그럴 때 흑암 세력과 하는 실제 대결이 되어지고 성령의 능력이 임재하면 흑암 세력은 자동으로 꺾여요. 근데 만약에 내가 이론과 지식으로 알고 내 열심으로 하려고 하면 흑암은 안 꺾여요. 이런 차이가 있는 거예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1절에서 3절에 눈이 확실히 열린 거예요. 그러니까 에베소서에 그 말씀을 쓰고 있는 거죠. 에베소서 이제 빌립보서 끝나면 에베소서 보게 될 텐데 놀라운 비밀을 얘기합니다.

놀라운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사람이 사도 바울이에요. 그러니까 핍박과 함께 계속 문이 열리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해서 이제 제자로 세워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나를 본받으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우리를 본받고 또 우리를 본받아서 행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라. 여러분이 그런 사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모델이 없어. 그러면 여러분이 모델 되라는 거예요.

 

3. 두 가지 경고

1) 18,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이런 자들이 누구인가?

18, 1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여러 번 너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지금 사도 바울이 눈물을 흘리면서 십자가의 원수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 지금 말하고 있어요. 아니 교인 중에 또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구원받았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를 행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누구겠느냐? 그 당시에 두 케이스를 염두하면서 지금 사도바울이 얘기하고 있다고 봅니다.

첫째, 복음을 받았는데도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예수 그리스도의 피보다도, 인간의 영적 문제에 빠져 있는 것도 모르고 인간의 행위에 방점을 두고 그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아서 구원받았다는 걸 주장하고 있고, 할례를 계속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실제 영적인 문제가 뭔지, 복음이 뭔지 모르는 종교인이에요. 생명 없는 종교인일 수도 있죠. 래서 첫 번째는 율법주의자들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둘째, 복음을 빙자한 방종주의자들을 경계하는 말씀이에요.

이 방종주의자는 뭐냐 하면 복음을 받았는데, 옛날에 육신의 욕망대로 살았던 삶이 워낙 체질이 돼 있어 갖고 그게 계속 사단의 통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육신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복음을 받아놓고도 그 삶을 계속 살고 있는 거예요. 과거 것을 끊어야 되는데 복음을 이용해서 계속 자기 합리화 하는 거에요. 우리는 복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 끝났어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죄 짓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19절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래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들의 신은 배라는 말은 육신의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그것을 지금 지적하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땅의 일을 생각하고 이제 하늘에 장차 곧 오시는 그리스도를 생각 안 한다는 거예요. 지금 다락방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성 비리가 여기에 속하는 거에요. 성 비리, 음주 문화 같은 거 이건 복음을 빙자한 방종주의가 되는 거예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는 것은 하늘의 일과 대조되는 육신의 욕망을 쫓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십자가의 원수가 된다는 거예요. 바울은 지금 강하게 책망하는 거예요. 여러분 자기만 아는 습관성을 끊지 못해서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 계십니까? 근데 마음 아파하는 것과 방종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달라요. 마음 아파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방종 하는 사람들은 마음 아파 안 하죠. 특징이 그렇습니다. 마음 아파하면서 그걸 가지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게 되면 자기 문제의 뿌리가 영적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줘요. 그렇죠? 사실 율법주의자도 지금 사단에게 속고 있는 거고요. 사단이 그렇게 복음 메시지 듣는데도 이 영적인 눈이 안 열리게 하는 겁니다. 이 방종 주의도 역시 마음 아파하면 방종주의자 아니에요. 진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또 회개가 나오죠. 그러는 가운데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가게 만드는 거예요. 메시지가 답이 되고 영적인 눈이 안 열렸던 부분이 열리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나의 태생과 나의 성장 배경 속에서 왜 이게 이렇게 방종으로 흐를 수밖에 없도록 사단이 이끌었는지 그런 것들이 열리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가운데 성령님이 이 문제를 해결해 버리신다 이 말이에요. 물론 여기에 지금 해당되는 사람은 여러분 중에는 없는 것 같아요. 아무튼 그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사도바울이 경고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 20, 우리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자이.

20절을 읽겠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로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여기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라고 그랬는데 이게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 원문에는 예수님 자기의 역사로 이렇게 해석이 됩니다. 그래서 여기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예수님 자신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우리의 낮은 몸은 뭐예요? 병들 수 있고 썩을 수 있고 지금 한계를 느끼는 또 죄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이 육체를 말하는 거예요.

이 육체를 이제 낮은 몸이라고 얘기하는 거거든요. 이것을 자기의 영광의 몸에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겠다는 거예요. 언제요? 만물을 복종하게 하실 때, 그때가 언제입니까? 재림하실 때 그래서 20절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재림 주를 기다린다는 거예요.

초대교회 때는 예수님이 떠나신 지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그 오실 것에 대한 기대도 굉장히 컸던 시대였다고 그래요. 지금 우리는 저기 마태복음 25장처럼 슬기로운 다섯 처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그런 시대예요. 신랑이 온다고 그러는데 안 와요. 늦은 밤이 됐어요. 다 자는 그런 상황이에요. 지금 이때 우리가 정말로 만물을 복종케 하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정말 사도 바울은 그런 면에서 이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을 했던 거예요. 믿음의 경주를 경주했던 사람이에요. 우리 고린도전서 1522절에서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여기에 부활의 순서가 나와 있어요. 첫 번째 부활자가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에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 재림하실 때를 말하는 거예요. 그때 성도들과 같이 재림을 하셔요. 그리고 땅에 지금 죽어 있는 사람들은 이제 몸의 부활이 일어나서 같이 합해지고요. 살아 있으면서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홀연히 변화되어져서 공중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랬는데 이거는 뭐냐 하면, 그리스도의 강림할 때 부활하는 사람들은 성도만 부활합니다. 성도만 이렇게 몸이 변화가 되는 거예요. 불신자는 아무 변화 없어요. 죽은 사람은 그대로 죽은 채로 있고, 살아남은 불신자는 땅에 남는 거예요. 마지막은 뭐냐 하면은 이제 불신자가 부활하는 날이에요. 재판받기 위해서 불신자가 다 부활을 하게 되는 게 마지막 부활이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불신자도 심판을 받는 거죠. 그래서 이 마지막 때는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이거는 이 땅의 지상계만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모든 타락한 귀신, 타락한 천사들 그리고 사단까지 이때 심판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영원한 유황 불못으로 떨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의 나라를 하나님 나라를 회복해서 하나님께 바치게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땅에 그래서 청직이고 증인이고 전도자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겁니다.

이번에 17차 집중 훈련 훈련하면서 두 가지가 되시길 바래요. 진짜 계속해서 여러분이 영적인 눈이 열리셔야 돼요. 정말 사람의 영적 문제에 어떻게 빠져 있는지를 보는 그 눈이 열리셔야 돼요. 그 말은 내 자신이 그렇게 안 보이면 그 눈이 안 열려요. 내가 보이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치유 회복되고 영적인 역량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그것과 함께 그 눈이 같이 열리는 거거든요.

 

결론

여러분이 오늘 사도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정말로 여러분이 이 사도 바울의 증인의 모습, 정말 제자의 모습, 그 사명자의 모습을 본받게 되는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 이런 축복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이번 집중 훈련 때 훈련 목표를 정하라니까요. 만약에 여러분이 이 집중 훈련인데도 설교 한 번도 안 듣고 설교 정리도 안 하고 녹취는 당연히 안 하고 나와 상관없는 훈련이다. 이렇게 하시면 하나님이 여러분 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 이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17차 주중 훈련 했는데 한 번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지금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거거든요. 마이웨이야, 그냥 마이웨이는 생명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진짜 하나님 앞에 지금 서 있는 거예요. 안 서 있는 거예요. 자기 목표를 세우세요. 자기 목표를 자기 목표를 세워서 자기 규례를 가지고 인도받는 중요한 시간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