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구원의 주권(엡 1:11~14)
서론)
1. 17차 집중훈련을 마쳤는데, 또 18차 집중훈련 전까지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기 바란다. - 여러분을 하나님이 자기 소원을 위해 부르셨기에 여러분 인생에 대한 절대 계획과 목표와 목적이 있다.
2. 여러분의 천명, 사명이 있다. - 구원받은 후에 그냥 내버려두시는 법은 없다. 하나님의 소원에 여러분을 가장 합당한 자녀로 회복하셔서, 여러분의 천명, 사명을 감당토록 하시는 것이다. 저는 전도사 때 이미 전도 제자 선교 비젼을 받았다. 세계 복음화하는데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을 주셨다. 그래서 제 목회 방향이 전도 제자 선교이다. 그런데서 전도사 때 제가 워낙 내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제게 하신 말씀이, “힘 빼라. 그대로 믿기만 하라”는 말씀이었다. 그후 저를 계속 인도하시는 여정과 시간표가 있었다.
3. 여러분에게도 여정과 이정표가 있다. - 우리는 환경이나 돈이나 사람이 의지의 대상도 아니다. 거기에 믿음의 현주소를 두거나 목표를 두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기업 삼으셨고 우리 기업도 하나님이시다. 세계 복음화와 하나님 나라 완성이라는 하나님 소원 속에 여러분의 천명 사명을 두고 여정과 이정표를 가기를 바란다. 거기에 시간표가 있다. 4. 하나님의 소원인 전도 제자 선교에 여러분의 방향 맞추기를 바란다.
- 에베소서는 이교도였던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편지라고 했다.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어떻게 교회의 일원이 되었는지, 어떻게 성도로서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내용이라고 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정립되고 현장에서 불신자에게 전도 메시지, 양육 메시지 할 수 있다고 했다.
1. 구원의 경위
1) 1:11~12절, 구원이 하나님의 예정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그리스도)안에서 기업(하나님의 소유)이 되었으니”12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다.
하나님의 소원이 먼저 시급한 자기 백성의 구원과 회복에 있다. 그러니 여러분의 관심도 천하보다 귀중한 한 영혼의 구원과 회복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 여러분 사실 거의 가문이 우상숭배 가문이었고 또 여러분이 영이 죽은 인본주의 인생을 살았던 인생이다. 그런데 여러분도 에베소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정을 입어 구원받은 것을 믿기 바란다.
2) 13~14절에는, 우리가 복음을 받게 된 구체적인 경위를 밝히고 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 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구원의 경위를 순서대로 정리하자면, (1) 하나님이 먼저 택하시고 예정하셨다. (2) 세상 창조와 창 3장의 사건이 있었다. (3) 그런데 때가 찬 경륜(하나님이 정확한 계획을)을 따라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보내셔서 그 피로 속량해 주셨다. (4) 그리고 여러분이 그 진리의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이다.
→ 복음을 듣고 믿어 라는 말은 여러분이 복음을 들을 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여신 거다. 행 16:14,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3:48,“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다 믿더라.”
→ 주님이 그 작정된 자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신 거다. 전도란 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거다. 전도는 삼위 하나님의 역사고 거기에 자기 종들이 쓰이는 거다. 저는 전도하러 나가기 전에 그런 기도한다. “하나님 오늘도 연출하여 주세요. 만남을 연출해 달라고 기도하는 거다. 하나님이 정말 출생 때부터 그 인생의 사건 문제 배경, 모든 상황을 개입, 간섭, 주관 통치하시고 그래서 이 구원받도록 이끈 사람을 만나도록 연출해 주옵소서” → 전도할 때 부담이나 힘은 다 빼야 한다. 상대가 안 받아들일 때, 눌리거나 낙심할 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나는 계속 믿음의 전도를 하는 거다. 구원의 주체가 되시는 주님을 계속 믿고 의탁하고 순종하는 것이 최고 잘하는 거다.
2. 구원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
1) 창 3장에 사단의 유혹은 왜 허락하셨겠는가?
아담은 순종을 전제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분명히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책임적 존재인데 그에게 에덴동산을 다스리도록 맡기셨기 때문이다(창 2:15~17). 아담은 하나님과의 계약에 있어서 책임적 존재였다. 그래서 순종 시 축복과 불순종 시 죽음을 분명히 알려주신 것이다. 불순종 시 죄에 대한 무서움과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알도록 해 주신 것이다. 사탄은 그것을 시험했고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이 불순종하자 곧 창 3:15의 복음의 언약을 허락하신 것이었다. 그러나 죄의 책임성이 있었기 때문에 내쫓김을 당했고 영적 저주, 환경의 저주, 육신의 저주를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그 후에도 계속 순종 시 축복과 불순종 시 저주를 말씀하셨다.
2) 롬 9:19~24에 이 구원의 주권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십니까 라고 인간이 항의할 수 있다. 롬 9:19~24, 토기장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하고 있다. 19절에 반문하는 거다. “하나님 어찌 허물하십니까? 안 택해서 안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허물하실 수 없는 거 아닙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뭐 우리가 대적이나 하겠습니까?” 이런 논조다. 근데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 지은 받은 물건이 지은이에게 어떻게 이같이 만들었느냐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권으로 하나는 진노의 그릇으로 만들 수도 있고 또 하나는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22절에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23절에,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런 말씀이다.
결론
1.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 의지 조화의 문제는 신학적 난제라 했다.
그 누구도 시원하게 답할 수가 없다. 우리 이성의 한계 때문이다. (해변의 물 웅덩이 예 화)
2. 저는 이 내용을 제 합리적 이성으로 설명하려하지 않는다. 100% 하나님 주권, 100% 인간 책임 이 두 가지를 다 받아들여야 한다.
칼빈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포함해서 하나님이 절대 계획과 목적을 이루어가신다고 했다. 웨슬리는 칼빈의 예정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3. 하나님이 우리를 진노의 그릇 삼지 않고, 긍휼의 그릇 삼으신 것을 찬송하고 또 찬송해야 한다.
여러분이 택하지 않고 주어져 있는 것들이 많다.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감사해야 한다. 여러분이 남자, 여자로 태어난 것도 여러분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부모를 여러분이 선택한 것도 아니다. 혈액형도 여러분이 택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택 못 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 분명히 지금 온 세상이 사탄 죄 저주 운명 가운데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진노의 그릇으로 삼지 않고 긍휼의 그릇으로 삼으신 것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로 하나님의 공의가 뭔지, 죄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그리고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얼마나 큰 건지를 바로 알도록 해 주신 것이다.
4. 그러므로 여러분 구원받은 자로서 이 세상을 하나님 공의의 눈과 아가페 사랑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전도자의 눈이라고 했다. 인생의 진정한 문제의 원인과 또 초래된 결과와 그 해결책에 대한 답을 주는 자로 하나님은 세우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현장, 나의 전도 시간, 나의 방법을 정해놓고 믿음과 의탁과 순종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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