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부터,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엡 2:1~7)
벌써 수년이 됐는데 제가 북부시장 옆에 무속인 집에 전도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할머니 무속인을 만났는데 그 이름이 원순희 씨예요. 깃대가 있는 거 보고 들어갔거든요. 그 가족 내력이 그 할머니의 어머니가 무당이고 언니도 무당이에요. 그 집안이 다 무당 집안이에요. 근데 자기가 무속인이지만 사실은 하기 싫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화가 돼서 그분이 복음을 받았어요. 그리스도를 영접했어요. 그 집에서 다락방을 했어요. 그랬는데 사단, 귀신이 방해해요. 어떻게 방해하냐면 제가 가서 말씀 공부하려고 하면 머리가 띠 아프대요. 그게 그냥 일반적인 두통이 아니라는 걸 자기가 느낀대요. 성경 공부를 못 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었어요. 자기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이 허리를 다치고 자꾸 탈이 난다는 거예요. 목사님 만나서부터 그런 것 같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설명했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소속이 바뀌는 건데 그동안 섬겼던 그 귀신이 방해를 안 하겠냐고 했어요. 이럴 때 확실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되면 귀신이 그리스도께 절대 굴복할 수밖에 없는데, 이걸 영적 싸움이라고 한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이분이 알아듣고 그러면 내가 지금 더 그리스도를 붙잡아야 되냐고 묻더라고요. 그렇게 하셔야 된다고 했고 이분 집에 신당도 있었어요. 자기 방이 있고 신당은 다른 방에 있거든요. 이분이 영접하고 말씀이 들어가니까 좀 회복이 되면서 저희 교회에 왔어요. 저희 교회 와서 얼마 있지 않아 신당까지 철거했어요. 그리고 저희 교회에 몇 개월 나오셨어요. 그러다가 이분이 정신이 약해져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어요. 그때부터 교회 출석 안 했거든요. 제가 여러 번 방문해서 기도해 주었어요. 그런데 정신력이 약해지니까 성령님을 의지하는 거, 그리스도 고백하는 게 잘 안되는 거예요. 그리고 본성에서 각인된 게 나오더라고요. 어느 날 갔더니 이분이 자기는 본래 불교를 믿었으니까, 불교로 돌아가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이 진짜 영접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아심이 제가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좀 이해가 돼요. 뭐가 이해가 되냐 하면 성도도 정신력이 약해지고 성령의 통치를 못 받으면 본성에서 올라오는 생각에 잡힙니다. 여러분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이럴 때 나타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얼마나 불교 속에 깊게 빠져 있었던 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의식이 약해지니까, 정신력이 약해지니까 말씀을 못 붙잡는 거예요. 본성에서 올라오는 욕구나 느낌이나 생각에 사로잡는 거예요.
여러분, 이 사람이 구원받았겠습니까? 구원 못 받았겠습니까? 저는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단언하기가 어렵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분명히 영접하고. 믿음의 고백도 하고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도 좀 느끼고 그랬거든요. 그런 게 전혀 없다면 이 사람은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한 사람이다 라고 얘기하겠지만, 저는 영접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제가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다만 그래서 정말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복음이 근본 뿌리 본질까지 각인돼야 해요. 믿는 자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을 확증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한 복음으로 불신자가 영접했다면 그가 어디서부터 구원받았고, 어떻게 구원받았고, 또 어떤 구원의 축복을 받았는지 정확히 알도록 해주어야 해요. 정확히 알도록 도와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이걸 확인 체험시켜 줘야 하는데, “난 진짜 구원받았고 내 안에 주님이 성령으로 계시다.” 이걸 체험시켜 줘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요? 기도 실제를 체험하게 만드는 거예요. 구원 못 받았으면 기도 안 되거든요.
이 사람이 실제 기도가 되어서, 무속인 속에는 귀신이 신내림 했지만, 그런 귀신이 아니라 주의 성령님이 계셔서 주시는 평안함, 또 성령께서 이끌어서 말씀이 생각나고 믿어지게 만드는 거 또 그래서 기도 응답 되는 거 이런 걸 체험하셔야 해요. 이걸 체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 말이에요.
에베소 성도들이 복음 받고 구원받았잖아요. 바울은 이들에게 지금 세 가지 것을 확인시켜 주는 메시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또 오늘 에베소서 2장 1절부터는 그들이 어떤 불신자 상태에 과거에 있었는지 그거를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중요해요. 구원을 어디서부터 구원받았는지 몰라. 그냥 교회 가니까 좋다. 이것 가지고 안 되잖아요.
1. 불신자 상태를 알게 해 주어야 한다.
1) 1절에 보니까 그는 예수 그리스도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영적으로 죽었다는 말씀이죠. 허물과 죄로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이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죽었을 때 너희는 그 영적으로 죽은 가운데서 행하여서 하나님께 대한 감각이 일체 없는 거예요. 들어도 안 들려요. 그냥 지식으로는 들리는데 심령에는 안 와닿아요. 그래서 필시 이 세상 풍조를 따르게 돼요. 이 세상 풍조는 뭘까요? 하나님 떠난 세상을 말하는 건데 하나님 떠나서 사람들은 무신론, 인본주의, 물질주의, 우상숭배 이런 가운데 빠져 살잖아요. 그걸 세상 풍조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오늘 초등부한테 물어봤거든요.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뭐냐? 그랬더니 사단이요. 이렇게 분명히 얘기하더라고요. 불신자는 사단을 믿기가 어렵죠. 하나님도 못 믿는데, 어떻게 사단을 믿겠습니까? 근데 쉽게 얘기하자면 그 원순희 씨 속에 역사하는 귀신의 우두머리를 사단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 자를 따랐다 이 말이에요.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란 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 역사하는 그런 영이다. 이 말이에요.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영이 죽은 상태에서 세상 풍조를 따르는 상태에서 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받는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했다”고 했어요. 이 육체의 욕심은 뭘까요? 죄성을 말하는 거예요. 아담의 모든 후손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있는데, 죄의 본성을 말하는 거예요. 그걸 육체의 욕심을 따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그 죄의 본성에 지배받는 그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게 지금 에베소 성도가 구원받기 전에 불신자 상태다 이 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세상에는 “난 착하다, 나는 선행을 많이 한다” 이런 사람들 많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소속입니다. 여러분 영적 소속이라는 게 있어요. 간첩이 남파돼서 우리나라에서 비밀이 활동하잖아요. 그 사람이 아무리 성실하고 아무리 부지런하고 아무리 진실해도 소속이 어디예요? 남파 간첩은 북한의 지령을 받는단 말이에요. 그 사람이 성실한 거, 근면한 거, 그거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오히려 지령받는 그 윗분을 위해서 충성하는 거죠. 사람들이 이걸 지금 인식을 못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 떠나서 전부 다 지금 인본주의 인생을 살고 있거든요. 하나님 없고 내가 나의 본위로 살고 있는 거를 인본주의라고 그래요.
제가 한동대에 가서 어떤 친구를 전도했어요. 세 번 만났는데 세 번까지는 메시지를 잘 들었는데 결정적으로 떠나가더라고요. 한동대 학생인데 그 친구 엄마 아빠가 이혼했어요. 아버지랑 같이 사는데 생활도 어렵고 삶이 곤고해요. 그런 상태에 만났는데 “정말 니 인생에 그리스도가 주인 되는 것은 니 운명을 바꾸는 거다. 니가 진짜 니 안에 그리스도를 진짜 믿고 의지하겠냐?” 그랬더니 많이 고민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친구가 뭐라고 얘기하냐면, “목사님 저는 제 힘으로 살래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면 자꾸 제 의지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요.” 애는 아주 자수성가 형이야. 지 힘으로 사는 친구인데, 제가 정확하게 복음을 전했거든요. 그랬더니 이게 영적으로 스파크가 안 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어렵다고 자꾸 하나님 의지하면, 내가 약해지는 거 아니겠냐”는 거예요. 여러분 일반 사람들이 이런 생각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하죠. 그래서 제가 설명을 해줬어요. “그게 아니야, 니 안에 예수님의 성령으로 들어가면 너의 의지력이 더 강해져, 정신력이 더 좋아져, 너 안에 눌리고 불안이 아니고 평안과 기쁨과 진짜 하나님이 너의 배경이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게 돼” 그러면 사람이 회복됩니까? 아니면 사람이 망그러집니까? 회복되는 거예요. 공부 못하는 사람이 공부를 더 잘하게 된다니까요. 다른 사람 미워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뀐다니까요. 나쁜 습관이 끊어진다니까요. 그게 예수 믿는 거야 하고 이 친구한테 설명했는데, 못 알아들어요. 이게 아직 예수님이 그 안에 안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안타깝게 끊어졌어요.
인본주의자의 특징이 뭐예요? 인본주의자의 특징은 삶의 모든 체제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기준이에요. 그래서 죄의 가장 근본 뿌리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창조주인데, 내 인생은 나의 것 하면서 사는 거예요. “하나님이 날 창조하신 게 아니야. 난 스스로 있는 거야.” 이게 사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기준이 인간 기준으로 다 바뀌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 이성이 만물의 척도가 되고 인간 이성이 만물의 기준이 되는 거예요. 선악의 기준도 자기 이성이에요. 근데 진짜 여러분처럼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 떠나서 사는 삶의 체제가 다 뒤집힌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말이에요. 알아듣습니까? 하나님을 떠나니까 영적인 감각이 없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안 되니까 인본주의는 어떻게 살아요? 오직 눈에 보이는 물질이 다예요. 육신이 다예요. 믿음의 현주소가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에 있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거 추구하고, 내가 가져야 하고. 내가 성공해야 하고, 내가 인정받아야 하고 그 욕구대로 사는 거예요. 내가 가난하면 안 되고... 하나님 배경으로 진짜 믿는다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보장하고 인도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데 그건 못 믿는 거예요. 그래서 삶의 체제가 바뀌었다는 말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거예요. 일반 종교는 인본주의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압니까? 몰라요. 종교는 뭐냐 하면 잘 들어보세요. 불교나 수많은 종교가 있잖아요. 그거는 창조주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의 필요를 위해서 의지의 대상을 구하고, 의지의 대상을 찾아서 믿는 거예요. 그러니까 일반 종교는 하나님 떠난 인생이 체제가 잘못돼 있고 하나님을 반역한다는 걸 인정 못 해요. 그냥 아무거나 믿고, 그냥 양심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니냐? 근데 양심대로 못 살아요. 솔직히 하나님 떠난 인간은 양심대로 못 살아요. 양심으로 심판받아도 지옥 갑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세상은 하나님 떠나면서 겁나게 죄짓는 세상으로 빠졌어요. 그래서 역사적인 심판이 성경에 벌써 여러 번 나타나요. 노아 시대 때 세상에 물로 심판을 받았죠. 완전히 이때 타락했거든요. 며칠 전에 보니까 뉴스에서 터키의 아라랏 산에 노아 방주 탐사하는 전문팀들이 탐사하고 있다고 얼마 전에 또 뉴스 나오더라고요. 실제 노아 방주가 있었던 거예요. 바벨탑 시대 때 창 11장에 바벨탑을 쌓았다가 무너졌잖아요. 그때도 심판받아야 했어요. 전 세계가 다 심판받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세상에 구원자를 보내기 위해서 심판하지 않고 흩어 버린 거에요. 그래서 세상의 언어가 갈리게 된 거죠. 그게 바벨탑 사건이에요. 아브라함 때도 심판받았어요. 소돔과 고모라와 두 성이 합쳐서 네 성이 불로 심판받았어요. 전부 다 특징은 죄악이 충만하므로 심판받았어요. 출애굽 때 누가 심판받았어요? 이집트가 10가지 재앙으로 심판받았잖아요. 완전히 전멸당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10가지 재앙으로 그냥 대표적인 심판을 허락하신 거예요. 그건 이집트의 우상을 향한 심판이기도 해요. 가나안 정복 때 누가 심판받았어요? 가나안 원주민들이 심판받았어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이때는 하나도 살려두지 말아라 이렇게 했어요. 왜요? 이미 죄악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땅을 차지하면서 그 땅을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신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또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범죄했을 때 어떻게 됐어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잖아요. 그러니까 역사적인 심판이 있다니까요.
인류 역사는 전쟁사입니다. 자기들끼리 심판하는 거예요. 1차 세계대전이 1914년 1918년까지 있었어요. 이때 죽은 사람만 한 2천만 돼요. 2차 세계대전 때 1939년에서 1945년. 이때 죽은 인원이 8천만 명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죄악을 가지고 서로 악이 충돌해서 전쟁으로 서로 심판하게 만드시는 거예요. 하나님 재앙이죠. 그래서 구약 성경에 보면 이 세상 종말에 있을, 전 세계적 심판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어요. 이사야서에도 예언되어 있고요. 예레미야서에도 예언되어 있고 에스겔서에도 다 세상 끝날, 이 땅 전체가 심판받는다. 이렇게 돼 있어요.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재림 때 징조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재림 때 징조 어떤 거 있어요?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전쟁이 그치지 아니하고 세상에 기근과 지진과 난리가 끊이지 아니한다. 근데 끝이 아니다. 마지막에 적 그리스도도 나타난다는 말씀을 하고 있죠. 그런데 그 이후에 예수님이 재림하게 된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여러분, 왜 제가 이런 얘기를 해요? 하나님 떠난 세상을 진짜 불신자 상태 보는 눈으로 볼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오늘 에베소서 2장 1~3절의 말씀으로 볼 수 있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영이 죽은 상태로 이 죄의 본성을 따라서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볼 줄 알아야 된다 이 말이에요.
2) 에베소 교인들은 거의 이방인들이었어요.
그러니까 원래 에베소 교인들은 하나님 믿은 사람들이 아니에요. 우상 숭배하던 이교도들이다 이 말이에요. 그런데 에베소서 1장에 그들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구원의 경위부터 말씀을 드렸어요. 창세 전에... 그 말씀 나오잖아요. 그리고 2장에서는 그들이 어디서부터 구원받았는지를 지금 말해준 겁니다. 저는요 우상숭배 심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이렇게 영적 메시지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무당 만나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우상숭배 심한 집안은 귀신이 직접적으로 역사한다는 거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여러분 정말 많이 빌면 신이 와요. 일반 사람은 귀신을 못 느끼거든요. 근데 많이 비는 집은 귀신이 직접적으로 터치합니다. 문제도 일으키고요. 마치 기도 응답하는 것처럼 역사합니다. 그런데 정반대로 하나님 안 믿어, 영적 존재 안 믿어, 무신론이라고 그러죠. 무신론 집안이나 철저히 인본주의 이성주의 집안도 사실은 에베소서 2장 1~3절 영이 죽었고 세상 풍조를 따르고 이게 다 적용이 돼요. 귀신의 실제에 대해서 안 믿을 뿐이지 영적인 소속은 사단 귀신이 지배한다 이 말이에요.
하나님 떠나면 인간은요. 영적 소속이 두 가지밖에 없어요. 원래 하나님 소속이든지, 떠나면 이제 사단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 말이에요. 모든 불신자는 요한복음 8장 44절 소속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낳나니 너희도 너희 아비의 욕심을 행하는 도다.” 요 13장 2절에 보면 가롯 유다에게 사단이 예수 팔 생각을 넣었더라 했어요. 생각을 넣을 수 있어요. 베드로는 예수 믿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예수님이 십자가 진다고 하니까 어떻게 됐어요? 적극 말렸잖아요. 자기 동기로 말린 거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죽으면 안 된다는 거는 정말 예수님 때문에 말린 게 아니고 자기 신상을 위해서 죽으시면 안 돼! 하고 말렸을 때 예수님이 뭐라고 그랬어요?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뜨리는 자라.” 예수님은 죽으셔야 되는데, 못 죽도록 하는 자다 이 말이에요. 베드로는 자기가 지금 사단이 준 생각을 말하고 있다는 걸 의식했을까요? 여러분,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자기들이 영적으로 사단의 지배를 받는다고 의식했을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모든 아담의 자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말씀을 거역한 죄에 빠진 상태예요. 하나님 관계에서는 분명히 우리가 책임적인 존재로서 죄에 빠진 상태예요.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어떻게 돼요? 사단에게 종 된 상태예요. 이 두 가지를 같이 봐야 헤요. 죄와 사단 귀신이 함께 역사해요.
2. 믿음의 위인들이 그냥 우리는 믿음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들도 철저히 자기 죄성을 깨달은 사람이에요.
그들도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3절에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믿음의 위인들도 자신이 불신자 상태 곧 죄의 상태에서 구원받았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했어요. 이거 인식 못 하면 사실 구원받은 게 아니죠. 구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모세, 다윗이거든요.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에요. 율법 받은 사람이야. 그런데 가나안에 못 들어가요. 왜 못 들어갔어요? 광야에서 백성들이 물이 없자, 막 원망하는 거예요. 모세를 향해서 그때 하나님이 지팡이를 가지고 저 반석을 향해서 지시하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랬는데 모세가 화가 났어요. 이 백성이 겁나게 말 안 듣거든요. 그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그러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꽝꽝 쳤거든요. 물은 터졌어요. 그랬는데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너는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 니가 마치 주인인 것처럼 성질을 내고 너는 나의 영광을 안 나타냈다 이 말이에요. 그냥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물을 내시고 그러면 그 앞에서 이 백성들이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 건데, 모세가 올바른 종의 역할을 못 한 거예요. 통로 역할을 못 한 거예요. 죄 지은 것은 요거 밖에 없는데도 너는 그것 때문에 가나안 땅 못 들어간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왜 그래요? 하나밖에 잘못한 거 없는데 율법이라는 거는 무섭습니다. 죄 하나만 있어도 천국에 못 들어가요. 완전 의인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못 들어가요. 하나님 나라는 죄를 용납하지 않아요. 티끌만치도 용납 안 해요. 그거를 보여주기 위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천국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가 못 들어가도록 한 거예요. 모세는 죽었는데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몰라요. 왜 그럴까요? 무덤 있으면 맨날 가서 그 무덤에서 또 헌화하고 무덤을 또 우상시할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아예 이 모세의 시체를 못 찾아요. 다윗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입니까? 그런데 다윗이 무슨 죄를 지었어요? 강간했어요. 그리고 살인했어요. 다윗이 물론 즉흥적으로 넘어갔지만, 다윗이 그 죄를 지적받았을 때 회개하는 시편이 시편 51편이에요.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요.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내가 죄악 중에 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말이에요. 나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고백하고 있는 거예요. 신약에서 사도 바울이 최고 훌륭한 사람이죠. 근데 사도 바울은 핍박자 고 대적자였어요. 근데 하나님이 전격적으로 다메섹에서 이 사람에게 나타나신 거거든요. 그래서 구원하셨잖아요. 뭐라고 고백해요? “나는 죄인 중에 괴수였노라.”그리고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혀서 많은 일에 쓰임 받았거든요. 근데 항상 자기 속에 교만이 올라오는 거를 사도 바울도 인식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노라” 이런 고백을 해요. 여러분 아무리 믿음이 좋고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이고요. 또 많이 쓰임 받으면 항상 교만이 올라와요. 그래서 목사님이라고 믿음이 좋기 때문에 죄 안 짓는 척하면 안 돼요. 항상 죄의 본성이 있다니까요. 믿음이 성숙할수록 죄에 대해서 민감해질 뿐이에요.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의 본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말 솔직한 포럼을 하는 거는 유익한 거예요. 감추는 게 아니고 진짜 여러분 속에 안 보였던 것이 보이고 그러면 그런 걸 포럼 하셔야 해요. 그러면 “저 사람 저랬나?” 이렇게 보는 게 아니라 “귀하다” 이렇게 봐요.
3. 에베소 성도는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1) 4~6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랬어요.
이거는 기독교에서만 가능한 것인데요. 누가 대신해서 죽어서 내 죄가 속죄받는 거 일반 종교에서 있습니까? 우리 찬희 형제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 이 말이에요. 근데 종교에서는 “니가 깨끗하게 살아, 니가 닦아야 돼” 이렇게 얘기하지. 예를들어 찬희는 완전히 육신적으로 살았는데, 자기 중심적으로 막 살았는데 정말 찬희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다 이런 건 기독교밖에는 없고 그래서 이걸 복음이라 그래요. 그래서 밧세바를 취한 다윗도 구원받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도 구원받는 거고 또 바울도 구원받을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보면, 5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6절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에베소 성도들 그때 다 살아 있는데 어떻게 하늘에 앉히시니 이렇게 얘기를 합니까? 이거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요. 인치신다는 게 뭐라고 그랬어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인치시셨고 우리가 천국의 상속자라는 것을 보증하신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진짜 성령으로 구원의 확신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시는 순간에 우리의 소속 신분 운명 통치 체제가 한순간에 다 바뀌어버려요. 이것이 미래까지 우리의 운명을 확정 짓는 거예요.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속죄하셨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죄인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리스도를 진짜로 영접하게 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영원까지 우리의 운명이 확정되어지는 거예요.
2)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그럼 옛날처럼 똑같이 살아야 됩니까? 우리가 진짜 구원받았으면 이제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돼요. 예전에 인식하지 못했던 죄도 인식하게 되고,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걸 알게 돼요.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1장 18~ 19절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그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이게 에베소 성도들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이 세 가지가 무엇인지 알도록 사도 바울이 기도했다고 그랬죠.
첫째 그의 부르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거잖아요. 단지 영적 생명만 얻도록 부르신 게 아니에요. 이제는 인본주의 삶의 체제로 살았던 그 체제를 바꾸기를 원하십니다. 3, 6, 11장의 본성대로 산 것에서 이제는 빠져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에서부터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통치를 실현시키고 아직도 불신자 상태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증거하다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도록 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명까지 주어져요.
두 번째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풍성함을 알아야 하는 거죠. 성도의 기업의 풍성이 뭐예요?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에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되고 내 배경이 되는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책임자, 보호자 다 되어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우리 기업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성도의 신분 권세 7가지를 누릴 수 있다 이 말이에요. 기도 권세 누릴 수 있어요. 기도할 때 우리에게 보좌에서 주의 천사를 동원하셔서 기도 응답하시는 권세 누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단 귀신이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임하면서 쫓겨나가요. 흑암 세력이 꺾여져 나가는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이 땅에서 염려 걱정하지 말라고 돼 있어요. 왜? 진짜 하나님이 배경 되어 주시니까, 하늘 시민권을 가지고 우리는 이 땅에서 땅끝까지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권세를 주신 거예요. 이게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에게 베푸신 지극히 크신 능력이 뭐예요? 지난주에 설명했는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머리는 그리스도시잖아요.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데 그 권세 누릴 수 있는 권한이 교회에 주어진 거예요.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있는 권세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니까요. 예수 이름으로! 그래서 우리의 포지션이 만물 위에 있는 교회라고 했어요. 우리는 옛날에는 항상 돈 없어서 걱정하고 환경 때문에 걱정하고 문제 생기면 걱정하고 일 때문에 눌리고 그랬는데 그게 전부 다 만물이거든요. 그 만물에 눌려 사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 자녀 되는 순간에 만물 위에 우리의 포지션, 위치가 있게 된다 이 말이에요. 그리스도께서 행할 수 있는 권세를 우리도 누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염려 대신에 그리스도를 기뻐하시면 돼요. 하나님을 기뻐하시면 돼요. 진짜 믿음으로 딱 뜻을 정하고 기도하고 제대로 맡기면 응답하십니다. 책임지세요. 목욕탕 가면 귀중품은 주인에게 맡기라고 돼 있잖아요. 정말 여러분이 중심을 가지고, 이 문제는 정말 주님의 문제입니다 하고 맡기게 되면 진짜 그 일 처리 들어가요. 문제 처리 들어가요. 근데 맡겼는데 계속 불안해요. 그러니까 맡겨놓고도 방법 자꾸 생각해요. 그 단계를 넘어가야 돼요. 진짜로 맡기는 평안함이 와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과 통합니다.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그래서 여러분이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원받았고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여러분이 먼저 확실히 체험하고, 이제 처음 예수 믿는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구원받았고 어떻게 구원받았고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를 여러분이 자세히 알려주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원순희 씨처럼 다시 헷갈리지 말고 정말 확신 속에서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돕는 그런 역할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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